[시론] 국가 비전의 붕괴와 북한 정권의 미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11일 조선노동당 창건 76주년을 기념하는 ‘역사적인’ 연설에서 ‘조선혁명’을 이끈 당의 공적을 장황하게 치하했다. 그리고 소위 ‘사상 사업’, 즉 혁명에 대한 믿음과 김 위원장 및 노동당에 대한 충성심을 유지하는 것과 관련한 여러 문제에 대한 해법을 촉구했다. 문제의 범위와 정도가 퍽 인상적인데, 북한 주민들의 믿음이 빠르게 약해지고 당 조직이 부패하고 무너져내리고 있는 걸 암시한다. 김 위원장은 놀라울 정도로 솔직하게 “사람들의 의식 상태와 사회적 환경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인정했다. 또 사상 사업의 요체를 “사회의 모든 성원들을 참된 충신, 열렬한 애국자로 준비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는데 많은 주민이 그렇지 못하다는 얘기다. ‘법기관’에 대한 당의 지도를 강조한 건 경찰(사회안전국)이 당 지시를 무시하고 있음을 안다는 뜻이다. 당 고위 일꾼을 두고도 “당 정책을 무조건 철저히 관철하는 것을 체질화”해야 하며, “건전한 도덕 풍모를 소유”해야 한다고 했다(즉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간 본 칼럼에서 북한 정권이 마주한 ▶코로나19 ▶경제 침체 ▶고위층 분열 등 여러 위기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조선혁명에 대한 믿음, 즉 국가 비전에 대한 믿음이 붕괴할 경우도 특히 간부층까지 그럴 경우 정권에 치명적일 수 있다. 이런 비전은 영국의 인도 통치 말기처럼 그저 소멸할 수 있다. 200년 가까이 인도인들은 정도 차는 있어도 발전과 번영이란 영국의 비전을 믿었기에 영국의 지배를 수용했다. 하지만 1945~46년 생각이 달라졌고 영국의 통치는 어느 관료의 말마따나 ‘헝겊 인형에서 톱밥 새듯이’ 힘이 빠졌다. 47년 인도는 독립했다. 비전은 때론 순식간에 파괴되기도 한다. 루마니아 독재자였던 차우셰스쿠는 사회주의 블록에서 국가 정체성을 지키고 국익을 수호할 지도자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1989년 12월 당국에 의한 반체제 목사의 교단 축출 사건이 계기가 돼 시위가 거세졌고 같은 달 21일 그의 연설은 야유 받았다. 4일 후 그는 처형됐다. 반면 벨라루스의 루카셴코는 지난해 부정선거로 신뢰를 잃었지만, 정보기관의 충성 덕에 반정부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정권을 유지했다. 북한은 수십 년간 강력한 비전에 의해 지탱됐다. 김일성 주석 땐 ‘아버지 수령의 보살핌을 받는 사회주의 지상낙원’이었고, 90년대 기근 이후엔 ‘적대적인 외세 공격을 받는 희생양’이다. 현명하고 자애로운 김씨 일가만이 핵무기 개발을 통해 북한을 속박에서 구원할 수 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의 이번 연설은 두 번째 비전마저 퇴색하고 있고 주민은 물론 당 일꾼마저 정권을 믿지 않고 있다는 걸 시사한다. 동시에 김 위원장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해법을 찾은 것 같지는 않다. 싱가포르 정상회담 때 번쩍이는 고층 건물 영상을 방영하며 새 비전을 제시하려고 애쓰는 듯했으나 씁쓸한 실패가 됐다. 그렇다면 북한 주민들이 외국인들처럼 북한을 ‘잔인하고 우스꽝스러운 지도자가 이끄는 불합리한 국가’라고 보게 될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이 경계한 “사람들의 의식 상태에서 일어나는 커다란 변화”다. 북한 정권엔 끝장일 수 있다. 어찌 될까. 영국의 인도 통치처럼 끝날까. 아니면 루마니아처럼 될까. 성난 군중이 갑자기 김일성광장에 모여 변화를 요구하면 김 위원장이 루카셴코처럼 시위대를 강제해산할 수 있을까. 경찰이 방관하진 않을까. 주민을 향한 발포 명령에 군이 따를까. 차우셰스쿠처럼 외려 그가 공격당할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국가 비전에 대한 신뢰 추락으로 북한 정권이 자체 붕괴한다는 발상이 터무니없게 들릴 수도 있다. 영국령 인도에서도, 루마니아에서도 불가능해 보였었다. 존 에버라드 /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시론 북한 국가 국가 정체성 국가 비전 사회주의 지상낙원